조선·明나라 문학외교 기록, 국보 됐다

입력 2018-08-23 16:43  

보물 '봉사조선창화시권' 승격


[ 서화동 기자 ]
세종 32년이던 1450년 명나라 경제(景帝)의 즉위를 알리러 조선에 사신이 왔다. 황제의 등극조서를 가지고 온 사신은 한림원시강(侍講) 예겸. 그는 유학과 문장에 탁월해 동료들로부터 ‘문학지사(文學之士)’로 불린 데다 한림원시강은 황제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최측근이라 양국 관계를 잘 조정할 수 있는 인물로 꼽혔다. 이에 조선에서는 당대 최고의 문사이자 세종이 총애한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을 원접사(遠接使)로 보내 그를 맞이했다.

당시 정인지는 55세, 신숙주는 34세, 성삼문은 33세였고, 명의 사신 예겸은 36세였다. 한양으로 오는 동안 기행시를 여러 편 지었던 예겸은 이들 원접사와 기회 있을 때마다 시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미묘한 대결 구도가 펼쳐졌으나 점차 상대에 대한 문학적·인격적 존경심이 더해 갔고, 마침내 헤어질 땐 서로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예겸은 정인지에 대해 “그대와의 하룻밤 대화는 10년 책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학식에 감탄했고, 나이가 비슷한 신숙주, 성삼문과는 형제의 의를 맺기까지 했다고 성현의 ‘용재총화(齋叢話)’는 전한다.

이때 주고받은 시와 산문 37편이 길이 16m의 두루마리에 실린 ‘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고 문화재청이 23일 밝혔다. 이 시권(詩卷)은 본래 예겸에 의해 시책(詩冊)으로 만들어졌으나 청나라 때 두루마리 형태로 재장정됐다.

이들의 문학적 교유는 개인적 친분관계로 끝나지 않고 조선의 높은 문화 수준을 중국에 널리 알렸으며, 이를 통해 조선에 대한 명나라의 인식을 드높이고 양국의 우호관계를 지속하는 기반이 됐다.

문화재청은 “명나라 사신과 조선 관료가 문학 수준을 겨루며 양국 간 외교를 수행한 일면을 살필 수 있어 한·중 외교사에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며 “친필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정인지·성삼문·신숙주 글씨를 전서·예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확인할 수 있어 조선 전기 서예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밝혔다. 1958년께 국내로 들여왔을 때 간송(澗松) 전형필 등 당대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감정한 기록도 남아 있어 의의가 더욱 크다는 설명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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